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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ng and winding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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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 토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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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코왈스키를 설명하는 단어들은 이렇다. 오랜 시간 함께 늙어온 래브라도 리트리버 ‘데이지’, 흠 없이 잘 관리된 작은 단독주택, 타지는 않고 차고에만 모셔둔 1972년식 포드 그랜 토리노, 50년 간 모아온 각종 연장이 즐비한 차고, 아이스박스에 가득 채워둔 맥주, 한국전쟁 때부터 간직해 온 것으로 보이는 M1 카빈 소총과 훈장.

여기에 몇 가지 그의 사고체계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그는 흑인과 동양인을 썩 좋아하지 않고,(사실은 다소 인종차별적인 반감을 갖고 있고) 탱크탑과 각종 번쩍이는 장식을 싫어하며, 근면과 절약을 세상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신보다는 스스로의 신념을 더 믿고, 경찰보다는 자신의 권총이 더 정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잘 빠진 일본제 SUV를 타는 큰아들은 코왈스키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완고하고,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늙은이일 뿐이다. 손녀는 할아버지의 건강보다는 할아버지가 죽은 뒤 주인이 없어질 빈티지 그랜 토리노에만 관심이 쏠려 있고, 옆집에 새로 이사온 ‘몽’족 할머니는 코왈스키가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몽족 커뮤니티 사이에 끼어 고집스레 버티고 있는 보기 싫은 백인 영감일 뿐이다.

코왈스키가 살고 있는 지명도, 시대도 알 수 없는 이 도시는 작은 지옥이다. 새로 이사 오기 시작한 몽족은 “남자애들은 감옥에 가고, 여자애들은 대학에 가는” 인생을 살아가며 미국에서의 낯선 삶을 견뎌낸다. 그저 현재와 가까운 어느 시대의, 겨울에는 눈도 내리는 4계절이 존재하는 해안 도시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칭송할 여유 같은 것은 이들에겐 없다.

영화가 끝나고, 그랜 토리노가 아름다운 해안을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던 것은 고집스런 코왈스키의 변화 때문이 아니었다. 코왈스키는 생전 처음 만나는 몽 족과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고,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았던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신부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그런 사소한 변화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고,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계속 고집스럽게 지켜내면서 모든 것을 이뤄냈다. 평생 잘못한 것이라고는 아내 몰래 다른 여자와 키스했던 것, 세금을 약간 내지 않았던 것, 아들들에게 소홀했던 것 정도가 전부였던 그의 고집스러운 삶은 결국 신의 뜻에 맞닿아 있었고, 외톨이같았지만 결국 다른 모든 이들과 통하는 보편성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늘 세월을 건너뛰고자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은 그 긴 세월의 힘이다. 미국인들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보여준 아메리칸 드림의 숭고함에 가슴이 뜨거웠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늙은 감독이 보여준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어내는 우리의 작은 신념의 소중함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과연 언제 이런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2009년 최고의 영화에 틀림없다.

Written by 가슴시린

3월 24th, 2009 at 12:24 오후

Why so ser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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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심각했던 건 조커 때문이었다. 조커는 배트맨을 보며 “당신이 나를 완전한 존재로 만들어”라고 연인에게 속삭이는 듯한 연사(戀辭)를 보내지만, 사실 우리를 완전한 존재로 만든 것은 조커였다. 내키는대로 아무나 죽이고, 어떠한 규칙에도 속박되지 않으며, 우리의 잘난 양심과 알량한 자존심을 끝간 데 없이 무의미한 것으로 타락시켜버리고 마는 조커의 존재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그동안 혼란과 무질서, 우리가 이룩한 모든 것들에 대한 조롱과 냉소를 보내는 데 익숙했다. 때로는 무정부주의자를 찬양했고, 때로는 나치에게 휘둘렸으며, 파시즘의 광기가 세계를 지배하도록 그냥 놓아뒀다. 늘어나는 국지전이라거나, 공격 당한 세계의 심장 등은 모두 조롱과 냉소를 키우는 자양분이 됐고, 끝도 없이 증식하는 유동성이라는 괴물은 흘러넘치고 넘쳐 사람들의 심장을 파고들어 나눔의 감동을 빼앗고, 탐욕의 욕망만을 밀어넣었다. 조커는 어쩌면 이 모든 것, 또는 그 이상을 대변하는 존재다. 그의 얼굴 위에 새겨진 흉터는 아버지가 칼로 새긴 것일 수도 있고, 아내 앞에서 면도날을 씹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 모든 것’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출생기록도 없고, 입고 있는 옷에 상표조차 붙어있지 않은 데다 이름도, 나이도 모두 미상이다. 조커는 돈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명예나 권력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왜 그렇게 진지하지?”라고 묻는 조커의 질문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혼란이지만, 조금 더 복잡하게 말하자면 ‘반대에 반대한다’는 식의 무정부주의다. 누구도 조커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에게는 이상이 있다. 이 영화는 조커의 이상과 배트맨의 이상의 대결이고, 이해할 수 있는 신념과 이해가 가지 않는 신념 사이의 대결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동안 미국인이 끊임없이 마주쳐 왔던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와 이해할 수 없는 세계 사이의 대결이며, 우리도 익숙하게 마주쳐 왔던 이해할 수 있는 가치관과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 사이의 대결이다. 나와 타자 사이의 의미 없는 구별에 대한 반성적 성찰 가운데 이처럼 박력있고 흥미진진하면서 진지했던 영화가 또 뭐가 있었는지, 난 도대체 생각이 나질 않는다.

영화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완전히 압도적이고, 내 인생에 이런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싶다. 나는 고뇌하는 배트맨이 최첨단 자동차에 올라 완벽 갑옷을 입고 고담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모습 정도에 열광하겠다는 마음으로 극장에 갔다. 극장에 들어가보니 그 모든 기대는 120% 온전히 채워졌다. 우선 히스 레저의 조커. 그는 잭 니콜슨의 조커를 우습게 만든다. 거의 20년 전이었던 그 때만 하더라도, 다시는 그렇게 매력적이고 위협적이며, 연민까지 불러 일으키는 조커를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내가 틀렸다. 위대한 배우를 가볍게 뛰어넘은 이 배우는 요절해버리기까지 한 터라 더욱 깊이 가슴에 남고 말았다. 그렇다고 크리스천 베일의 배트맨이 조커에게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미끈하고 잘 생긴 모델같은 남자가 마이클 키튼 못지 않은 수준으로 고뇌하는 배트맨을 연기하다니. 일종의 축복과도 같은 일이다. 옛 영광 따위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도 된 것 같다. 헐리우드도, 관객들도, 모두 진화하고 있으니까.

p.s. 조커가 속삭이는 “You complete me.” 어디서 들어봤다 했다. 제리 맥과이어에서 톰 크루즈가 르네 젤위거에게 했던 말이었다. 아, 그리고 매년 스스로 정하는 올해 최고의 영화. 2008년에는 아마도 이 영화가 아닐까. 오늘내일 중으로 보기로 했던 ‘월E’가 좀 걸리긴 하지만.

Written by 가슴시린

8월 11th, 2008 at 2:22 오전

본 얼티메이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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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가기 전에 기대를 하는 영화는 대개 극장에 가서 실망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 경우 조용히 혼자 속으로 되뇌이곤 한다. “괜찮아, 극장에 가기 전, 기대에 부풀어 터질 듯한 마음을 갖게 해 줬잖아. 그 시간까지 합친다면 이 영화의 효용은 최고인 셈이었어.” 기대가 컸던 영화보다는, 오히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봤던 영화에서 열광적인 환호를 하게 되는 법. 극장에 다녀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어봤을 경험이다.

본 얼티메이텀, 3부작의 완결편. 극장으로 가기 전 걱정되는 게 하나둘이 아니었다. 우선, 평이 지나치게 좋았다. 사상 최고의 스파이 액션을 보고 나왔다는 듯, 사람들은 열광하고 있었고, “전편을 뛰어넘었던 2편을 또 한 번 뛰어넘는 완결편”이라는, 보기도 전에 기부터 죽이는 찬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귀를 막고, 눈을 감을 수 있다면, 그런 환호성 한마디마저도 듣지 않은 채 영화를 보고 싶었다. 실망이 두려워서. 더 이상의 스파이 영화란 없을 정도로 좋아했던 시리즈였기 때문에.

그렇게, 극장에 가기 전, 가슴이 기대에 부풀어 터질 듯 했는데도 불구하고, 기꺼이 높아진 기대를 충족시킨 뒤, 엄지 손가락을 번쩍 치켜세우며 나올 수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 최고다. 너무 최고라서 정말 더 할 말이 없다.

p.s. 개인적으로는 4편이고 5편이고 계속 찍어댔으면 좋겠지만, 맷 데이먼이 “이번엔 정말 진짜 절대로” 속편에 출연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이 인간은 1편 촬영이 끝난 뒤에도 같은 소리를 했고, 2편 찍은 뒤에는 더 심하게 속편을 거부한 바 있다.) 어쨌든, 그렇다는 전제하에, So long, Jason Bourne. 그동안 무척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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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최고의 영화

Written by 가슴시린

6월 15th, 2008 at 5:31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