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ettist

the long and winding road

Archive for the ‘애플’ tag

스티브 잡스의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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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예수의 일대기라도 설명하려는 것처럼, 이 책의 원 제목은 ‘the Second Coming of Steve Jobs’였다. iCon 스티브 잡스가 발간됐을 때, 스티브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애플 내부에는 절대로 그 책을 놓아두지 못하도록 지시를 했다고 하는데, 곰곰히 따져보면, 사실 정말 더 화가 났을 책은 이 책이 아니었나 싶다. 저자인 앨런 도이치먼은 기자로 애플을 취재할 때부터 몇 차례 스티브를 화나게 하는 기사를 써 왔던 사람이었고, 이 책은 iCon보다 훨씬 더 스티브의 사생활과 개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풀어놓는다.

한국에서야 흔히들 미국 경제의 활력을 얘기하면서 “한국에선 기업 환경이 좋지 않아서 스티브 잡스같은 사람이 나오기 어렵다”거나, 스티브 잡스의 경영을 보면서 창조경영이네, 디자인경영이네 떠들어대곤 하지만, 이 사람에 대해 보면 볼수록 깨닫는 것은 이런 식의 존재라는 건 미국에서도 몹시 드문 사례라는 것이다. 미국이라서, 실리콘 밸리라는 훌륭한 토양이 있어서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이 태어난 게 아니고,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이 우연히 미국에서 기업을 이뤘을 뿐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실리콘 밸리와 미국이라는 환경은, 아마도 단지 거들었을 뿐.

국내에서는 이미 절판돼 구하기 어려워진 책이지만, 스티브 잡스의 건강이상설이 다시 모락모락 흘러나오고 있고, 마지막 키노트에서 봤던 스티브 잡스의 모습이 몹시도 수척해져서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내는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할 의미는 충분하다. 아직 젊은 사람인데, 우리에게 the Third Coming은 보여줄 수 없는 것일까. 더욱 가까워진 세계는 아직도 이런 사람을 필요로 하는데 말이다.

Written by 가슴시린

12월 22nd, 2008 at 1:42 오전

월-E,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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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E가 태양광 충전을 마치면 ‘잔~’하는 소리가 들린다. 극장에서 별로 웃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 부부만 웃는 게 좀 어색하긴 했지만, 이 소리는 사실 매킨토시 컴퓨터에 전원을 넣으면 처음 가동될 때 울리는 소리다. 그뿐만 아니다. 월-E의 여자친구 이브는 생긴 게 영락없는 아이팟이다. 둥글둥글한 외양은 ‘호빵’이란 별명을 얻었던 아이맥도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이브의 디자인은 실제로 아이팟과 아이맥을 디자인했던 애플의 디자인담당 수석부사장 조나단 아이브가 ‘감수한’ 작품이다.(제작진은 아이브를 찾아가 이브를 디자인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아이브가 이것저것 고민하더니 결국은 제작진의 아이디어를 약간 수정해서 ‘오케이’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여 줬다고 한다. 참, 아이브는 IVE라고 쓰고, 이브는 EVE라고 쓴다.) 열심히 엔딩 크레딧을 읽었다면, 스페셜쌩스투에서 가장 먼저 나왔던 이름을 기억할지 모른다.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월-E가 열심히 ‘헬로 돌리’ 뮤지컬을 보기 위해 틀어대던 화면은 볼록유리에 아이팟의 화면을 확대한 것이었고, 액시엄 호를 이끌어가는 메인컴퓨터 ‘오토’의 목소리는 매킨토시의 음성인식 및 합성프로그램인 ‘매킨토크’를 통해 제작된 음성이다. 게다가 액시엄의 폐기처리장으로 월-E와 이브가 떨어졌을 때, 이들의 주위를 기어다니던 쥐(mouse)들은, 애플이 초기에 개발해 사용하던 원버튼 마우스들이다.

월-E는 애플에 대한 픽사의 헌사이고, 스티브 잡스에 대한 픽사의 천재들이 보내는 감사의 노래와 같은 영화다. 제작진은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헌신의 힘을 다해 회사를 이끌어왔고, 잡스는 천재들의 재능을 제대로 알아보고 지원해 오늘날의 픽사를 만들어냈다. 불같은 성격과 냉혹한 결단으로 악명이 높은 스티브 잡스였지만, 그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주위에 능력있는 사람을 모을 줄 안다는 것이다. 펩시의 CEO 존 스컬리는 스물다섯살의 스티브 잡스가 “평생 검은 설탕물만 팔며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꿉시다”라고 당돌하게 주장하는 모습에 반해 자리를 옮겨 애플의 사장이 된다.(결국 나중에 스컬리가 잡스를 애플에서 몰아내게 되고, 잡스는 ‘내가 사람을 잘못 뽑았다’며 후회하긴 했지만.) ‘디즈니 장학생’이었던 존 라새터는 스티브 잡스의 눈에 띄어 픽사에서 일하게 되고, 결국 토이스토리를 만들며 픽사의 중추로 성장했고, 스티브 잡스와 함께 매킨토시를 만들던 트립 호킨스는 애플을 그만둔 뒤 일렉트로닉아츠(EA)를 설립한다. 아무리 성격이 괴팍해도, 그의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만이 갖고 있는 매력 때문에.

픽사 역시 지금과 같은 모습을 예상하고 만들어진 회사가 아니다. 멋진 컴퓨터를 만드는 데 혈안이 돼 있던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는 이혼 위자료를 마련하기 위해 회사를 팔아치워야만 했던 조지 루카스에게서 헐값에 컴퓨터 그래픽 부문을 사들인다. 에드 캣멀과 같은 훌륭한 컴퓨터 그래픽 엔지니어가 그 덕분에 스티브 잡스에게 합류하게 됐고, 이어서 존 라세터와 같은 훌륭한 예술가도 픽사의 일원이 된다. 잡스는 계속해서 픽사가 컴퓨터 애니메이션도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컴퓨터 제조회사가 되길 원했지만, 회사는 생각과는 조금 달리 돌아간다. 이 회사가 만드는 컴퓨터는 너무 비싸고 사용법이 복잡해 도통 팔리질 않았는데, ‘렌더맨’이라고 불리는 그래픽 소프트웨어만큼은 잘 팔리게 된 것이다. 게다가 라세터가 이끄는 애니메이션 팀은 조그만 단편들을 만들더니 애니메이션 대회에서 상까지 받아가지고 돌아오곤 했다. 픽사는 여전히 돈이 없었고, 컴퓨터는 팔리지 않았으며, 연명할 수 있던 건 소프트웨어였고, 성장의 기회가 있다면 애니메이션 뿐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도박을 한다. 디즈니와 계약을 하고 토이스토리를 만든 것이다.

이후에는 모두가 아는 얘기다. 토이스토리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벅스라이프는 드림웍스에게 아이디어를 도용당해 늦게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미’의 두 배에 가까운 흥행 성적을 거둔다. 최고의 예술가 존 라세터는 ‘아이언 자이언트’를 만들었던 브래드 버드 같은 후임들에게 전권을 위임할 줄 알았고, 그런 후임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니모를 찾아서’로 이름을 날렸던 월-E의 감독 앤드루 스탠턴이었다. 라세터는 간혹 스스로 감독을 맡기도 하면서, 주로 제작총지휘를 담당하고는 후배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곤 했다.

라세터가 초기에 스티브 잡스라거나 디즈니의 마이클 아이스너 등을 설득하기 위해 자주 써먹었던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건 CG로 제작될 영화의 모습을 궁금해하는 물주들 앞에서 그림을 보여주며 직접 애니메이션을 시연하는 것이었다. 가진 건 돈과 권력 밖에 없는 헐리우드의 거물들은 종이에 거칠게 4B 연필로 휘갈긴 스케치를 한 장씩 넘겨가며 갖은 목소리와 억양을 바꾸어 ‘연기’를 펼치는 라세터의 모습에 푹 빠지곤 했다. 라세터는 종종 애니메이션의 감독은 그 스스로가 연기자여야 한다는 얘기를 하곤 했는데, 픽사의 후임들도 그런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 있진 않다. 앤드루 스탠턴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다보면 토이스토리 시절부터 주욱 갖은 목소리 연기를 해왔던 경력을 찾을 수 있다.

이 영화가 좋다고 말하는 건 의미가 없다. 마치 다크나이트가 좋은 영화였다고 말하는 것 만큼이나. 그런 상식적인 수사의 범위를 넘어서는 뭔가가, 그런 게 담겨 있는 영화들이 있다.

Written by 가슴시린

8월 11th, 2008 at 5:48 오후

iCon,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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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저 일요일 저녁에 집어든 책일 뿐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고, 또 일종의 자료 조사 차원에서도 이 책을 읽어야 했다. 그래서 침대에서도 읽었고, 소파에서도 읽었는데, 그러다 일요일 저녁이 모두 지나버렸다. 월요일 출근길, 나는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으며 수없이 낄낄거리고, 코끝이 찡하도록 감동을 받았다. 내 감정의 이입은 몹시도 당황스러운 것이었는데, 이입의 대상이 바로 이 괴팍하기 이루 말할 데 없으며, 성격이 모나기로는 아마도 은하계에서 경쟁자를 찾기 힘들 것 같은 데다, 자기 도취와 냉혹함이라는 합쳐지면 극약이 되는 화학물질을 대뇌에서 날마다 합성하고 있던 스티브 잡스였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이 책은 아침 출근길에서만 읽어야 하는 책처럼 느껴졌다. 내 회사도 아닌 회사에서, 내가 인생을 바쳐 가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 직장인에게, 바다 건너의 모난 천재의 삶은 인생의 지침서와도 같았다. 내가 내 인생을 조금만 더 훌륭하게 살고 있었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남들과 쉽게 어울리고, 타인의 잘못에 나의 잘못만큼 관대하게 응할 수 있는 좋은 성격을 가졌더라면, 이 책은 내게 아무 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스티브 잡스가 “절대로 그들과 인터뷰하지 말라, 걸리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공언했을 정도로 이 책의 저자인 윌리엄 사이먼과 제프리 영은 스티브 잡스의 약점을 강조함으로써 그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은 법이지만, 골로 떨어지고 있는데 기분 좋을 사람은 없는 법이다. 게다가 그 골로 떨어져야 하는 운명을 받아 들여야 하는 사람이 스티브 잡스라면 더더욱. 그 덕분에 하나는 확실해졌다. 이 책에서 나쁘게 말한 스티브의 모습은 아마도 90% 이상 정곡을 찔렀던 모양이다.

사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2005년 1월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의 맥월드 컨퍼런스에, 나도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를 봤다. 췌장암을 극복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놓고서는 자신감과 열정만으로 수천 명을 압도하는 그 사람을. 그 때 내가 만났던 것은 한낱 기업체의 CEO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예술가였다. 하이테크 산업에 대한 열정이라는 자신만의 재능을 이용해 제품과 서비스라는 예술품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키고야 만다.

서태지가 새 앨범을 냈다. 중고등학교 때처럼 너무나 새로운 음악이라고 감탄하기에는 난 너무 음악을 많이 들었다. 딱히 그의 음악이 다른 가수들보다 뛰어난지도 이젠 모르겠다. 그래도, 난 여전히 마우스를 클릭해가며 서태지의 새 앨범을 산다. 버릇 때문이 아니다. 그건 예술가와 팬의 상호 교감이다. 네가 아무리 삽질을 해도, 난 널 알아볼 줄 아는 안목 있는 팬이니, 너의 삽질마저 아름답게 받아들여주겠다는 식의 어리석은 교감.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겉모양만 번드르르했지, 너무 납작해서 오래 타이핑하면 손이 아픈 아이맥의 알루미늄 키보드와, 툭하면 고장을 내서(벌써 세 개 째다) 열받게 하는 마이티마우스를 붙잡고 있다. 거실 TV에 달린 홈씨어터용 PC는 제조일로부터 딱 1년 만에 메인보드 고장으로 AS센터에 한 차례 다녀와야 했던 맥미니이고, 내 서랍에는 이제 배터리가 1시간도 유지되지 못하는 2004년 초에 산 구식 아이팟이 수많은 형제들(아이팟 셔플, 나노 등등)과 함께 잠들어 있다. 겉보기엔 멋져 보이지만, 실속을 따진다면 애플의 제품은 살 게 아니다. 그래도 난 여전히 지갑을 연다. 그건 콘서트에 가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오늘은 그 가수가 목이 쉴 수도 있지만, 내일은 아마도 전설로 남을 공연을 벌일지도 모르는 것이고, 그 때 내가 그 자리에 없다면, 그 슬픔은 평생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 그 전에는 글로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젠 된다. 다 이 책 덕분이다.

Written by 가슴시린

8월 1st, 2008 at 4:40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