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ettist

the long and winding road

천사와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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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몰라도, 바티칸에 대한 묘사만큼은 탁월했다. 콘클라베를 둘러싼 긴장감이라거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를 때마다 탄식하던 바티칸의 신도들의 모습, 보수적이고 신중하면서 무엇보다 명예를 중요하게 여길 줄 알던 사제들의 엄숙함까지.

전에 ‘퀸’을 볼 때에도 느꼈던 감정이지만, 구대륙의 역사는 정말 장엄하다. 미국인들이 아무리 우주와 시공을 넘나들고, 기계문명과 나노 단위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할지라도, 수백년, 수천년을 거치며 쌓아온 인간의 문화보다 더 감동적이긴 어렵다. 다행히도 댄 브라운은 그 점을 잘 이해하는 작가이고, 론 하워드는 두번째 영화에 이르러서야 그 사실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지 못해 뒤집고 또 뒤집고 또 뒤집는다는 원작의 ‘반전의 연속’을 즐기지야 못했지만, (아마도 앞으로도 소설을 읽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바티칸만으로도 충분했다.

Written by 가슴시린

6월 9th, 2009 at 4: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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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해방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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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지속되는 시리즈에 대한 남발되는 오마주와, 끼워맞추느라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스토리라인, 차라리 인형을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색했던 CG로 제작한 ‘깜짝 등장 아놀드 주지사’… 탓하려고 들자면 탓할 게 한두 장면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터미네이터였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나중에 시리즈를 어떻게 봉합하려고 여기까지 몰아붙이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막 간’ 상태다.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다는 1, 2편도 딱히 훌륭할 것은 없는 게, 미래에서 사라 코너를 구하기 위해 과거로 왔던 카일 리스가 생년월일 기준으로 자신보다 수십살 연상인 사라 코너와 사랑에 빠져서 존 코너를 낳는다는 설정부터가 일종의 ‘원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래에서 보낸 T-800 때문에 심판의 날이 생기다니… 그걸 꿰어 맞추려다보니 존 코너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T-800을 해킹해서 다시 과거로 돌려보내고, 그 다음에는 케이트 브루스터가 존 코너와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 또 다른 T-800을 해킹해서 과거로 보낸다. 이럴 바에는 T-X를 터미네이터 1편의 시대로 보내버리면 더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텐데도 똑똑한 스카이넷은 결코 그런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이유는 하나겠지. 시리즈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80년대와 90년대, 2000년대를 10년씩 건너뛰며 25년을 이어져 내려 온 이 시리즈는 결국 2018년의 미래에까지 이른다. 존 코너는 케이트 브루스터와 2003년에 이미 로맨틱한 관계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15년 동안이나 자식 없이 지내다 이제야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스토리를 따지는 게 이렇게 부질없는 시리즈가 또 있겠냐만서도(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이 시리즈에는 백투더퓨처만큼의 리얼리티도 없다.) 결국 또 부질없는 짓을 하기 위해 3편을 다시 꺼내어 봤다. 의미심장했던 건, 존 코너의 죽음이 3편에서 예고되고,(T-800에게 살해된다. 그것도 3편에서 존 코너와 케이트 브루스터를 구하기 위해 파견됐던 바로 그 로봇.) ‘단파 라디오’가 앞으로 레지스탕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암시가 나온다는 것 정도다. 게다가 극장 개봉 당시에는 몰랐는데, 3편의 디자인과 스카이넷에 대한 설정은 4편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4편의 묵시록적인 세계는 3편의 프로토타입이 진화한 것일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해온 바와 같이, 이 시리즈의 4편은 꽤 괜찮은 영화다. 1편이 약간 호러와 같은 느낌을 줬다면, 2편은 정말 잘 짜여진 블록버스터였고, 3편은 액션(특히나 초반의 자동차 추격신)에서만큼은 최고였다. 4편은 전작들을 모두 뛰어넘어야 했다. 하지만 저예산 시절의 공포물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했고, 2편 만큼이나 완벽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기에는 3편이 벌여놓은 뒷수습을 하기에도 급급했다. 3편의 액션이 리얼했던 건 조너던 모스토우의 역량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배경이 현대였기 때문이었는데 2018년이 배경인 4편에서는 자동차가 건물을 때려부수는 식의 액션은 애당초 불가능하게 마련이다. 시리즈의 전작들을 닮기 보다는 오히려 ‘트랜스포머’에 가까울 4편에 ‘리얼한 액션’을 가미하는 방법을, 감독인 맥지는, ‘전쟁’에서 찾았다.

총탄이 날아다니고 구식의 A-10 썬더볼트와 최첨단 헌터로봇이 맞붙는 식의 설정은 현대의 무기를 갖고 최첨단 미래형 로봇과 싸우느라 악전고투를 벌여왔던 기존 시리즈의 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다. 이제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다른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싸우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여전히 자기 희생, 기계의 인간성, 압도적인 차이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 등의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들이 변주되며 이어지지만, ‘인간보다 인간다운 기계’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느라 흘러왔던 2, 3편보다는 훨씬 더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의 편에 서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5편도 당연히 만들어야 할텐데, 그때는 누가 이 부담을 짊어지고자 할까. 이 시리즈는 어디까지 이어질 생각인 걸까.

Written by 가슴시린

6월 1st, 2009 at 6: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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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즈에게 바치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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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미국에 간다면 시애틀에 꼭 가보고 싶었다. 이유는 꽤 단순했다. 시애틀이 커트 코베인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커트 코베인은 죽었는데도, 그저 가보고 싶었다. 파리에 가면 꼭 페르라셰즈의 짐 모리슨 무덤 앞에 가보고 싶었던 것처럼.

요새는 미국에 간다면 꼭 뉴올리언스에 가보고 싶다. 가장 큰 이유는 시애틀에 가봤기 때문이긴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 벤자민 버튼과 같은 영화들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이런 표현을 들으면 어떻게 느낄지야 알 수 없으나, 이런 영화들을 보고 있자면 뉴올리언즈야말로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가 아닐까 싶어진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날의 벅차는 기쁨을 광장과 거리에서 나누던 아름다운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난 벤자민 버튼은 추하기 그지 없었다. 날 때부터 죽을 날을 기다리는 노인이었으니까. 이 날 태어난 벤자민 버튼의 운명을 예고했던 건 전장에서 희생된 자신의 아들이 되살아나기를 염원하며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들어낸 시계공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영화의 끝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즈를 덮치던 재앙 직전의 뉴올리언즈였다. 시계공이 만든 거꾸로 가는 시계도 바로 그 순간 움직임을 멈춘다. 마치 ‘과거를 되돌리고 싶다는 당신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듯, 하지만 ‘이제는 거꾸로 가는 시계 대신 앞을 보며 살아갈 때’라고 얘기하는 듯. 2009년 개봉된 이 영화를 찍는 사람들의 마음이 꼭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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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되기 전의 뉴올리언즈를 그려낸 다른 영화 ‘러브송’(바비 롱을 위한 사랑노래)도 기억이 난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이 도시에 매혹되게 만들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이 도시의 아름다움이 너무나 아쉬워지게 만들었던 영화.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는 2004년에 촬영됐다.

카트리나의 충격이 한창이었던 때 봤던 이 영화가, 보지도 못한 도시를 아쉬워하게 만들었고, 마치 탈레반이 석불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던 때마냥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했다. 그리고 그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줬던 영화가 있다. 토니 스콧의 ‘데자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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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스릴러, SF, 액션이었는데도, 난 그저 뉴올리언즈만 보였다. 마디그라 축제의 열기, 카트리나 이후 미국 전역에서 답지한 성금과 자원봉사자의 행렬로 순식간에 절반 이상 복구됐다는 뉴올리언즈의 ‘복원된 과거’ 등이 매력적이었던 건 기본이다. 더 가슴에 와 닿았던 건 ‘데자뷰’라는 소재였다. 이미 봤던 일인 듯한 그 느낌, 하지만 뭔가 현실은 아닌 듯한 그 기시감. 2007년의 뉴올리언즈를 설명하는 데 데자뷰보다 더 적당한 어휘가 있었을까. 게다가 이 영화는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 뉴올리언즈에서 촬영된 첫 영화였다.

미국에 간다면, 꼭 뉴올리언즈에 가보고 싶다.

Written by 가슴시린

5월 13th, 2009 at 8:57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