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박쥐

나이가 먹은 건지, 감각이 무뎌진 것인지, 아니면 그저 바보가 된 건지, 더이상 박찬욱의 영화가 좋지도 않고, 심지어 불편하기까지 하다. 보고 나서 불편하거나, 보는 동안 불편하다는 게 아니라, 보려고 갈 마음을 먹기까지의 과정이 몹시 불편하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박찬욱 영화가 개봉했대.” “응” “아, 나 올드보이 정말 좋았는데.” “응” “박쥐 보러가고 싶다.” “난 아냐.” “왜? 박찬욱 안 좋아해? 올드보이 멋지지 않았어? JSA는?” “…”
박찬욱 얘기를 하면 전 국민이 영화 평론가다. 사이보그는 정말 괜찮지 않았고, 올드보이는 진짜 구려터졌으며, 친절한 금자씨는 짜증나는 금자씨였고, JSA 정도나 좀 괜찮았다고 얘기하면, 금세, ‘무식하고 영화를 모르고 박찬욱을 이해 못하는 인간을 만나 내가 고생한다’는 식의 싸늘한 눈빛 또는 그런 이들이 나처럼 영화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내비치는 ‘화제 전환 비공’(아, 쟤는 영화를 이해 못하는 애구나… 식의)이 돌아온다. 그런 사람이 사실 또 있긴 하지. 봉달…아니 봉모 감독.
그래서 박쥐가 개봉을 하든 말든, 보지 말아야지, 라고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벌써 100만 관객을 넘었네 어쨌네 난리 법석이다. ‘살인의 추억’을 끝까지 보지 않고 있을 때 사람들이 소리치며 칭송하던 그 한가운데 들어서 있는 느낌. 그러니까 일종의 왕따를 당한 느낌이 든다. ‘영화’라는 키워드가 입 밖에서 나오면 너도나도 박쥐와 박찬욱의 얘기다. 지금 봐야 할 영화가 쌔고 쌨는데, 이런 식의 박찬욱이라는 존재 때문에 나는 고독하고, 도무지 이 나라에선 영화팬이란 게 될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왜 우리는 모두가 한 사람을, 하나의 스타일을 칭송해야 하는 것일까. 그는 결코 메이저 취향도 아닌데. 아, 봉달… 아니 봉모도 있다고…?
그래서 이번엔 수련을 해 볼 생각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박찬욱을 떠들어대고, 박쥐 이야기를 해대도, 나는 애써 무심한 듯 하기, 이 열풍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 있기.

책은 채기 부르듯.
영화는 영화가 부르기에 영화 그 자체 못지않게
다른 중요한 흐름이 있는가 봅니다.
문제작이라는게 흥행을 피하기는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보지 않고서는 비판도 못하기에 영화는 보지 않고서는 말하지 못하는 그런 것인지..
일단 회자가 되기 시작하면, 일단 그 영화를 보야아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상황인것 같습니다.
그것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조금 상관 없는 말을 해버렸네요.
upepo
5 5 09 at 12:31 오전
이 얘기는 진짜 오래전부터 제가 해오고 싶었던 거라 완전 공감하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금자씨를 보고서 되게 찝찝하고 불쾌했거든요. 그 유머 코드라는 것도 이상하고.. 올드보이도 마찬가지였고. 금자씨 보면 그 유머 감각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코드가 전 굉장히 치기 어리다고 생각하는데다가 불편하기까지 하거든요. 근데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구요. 난 박찬욱이 자기 스타일이 있어서 좋아, 라고요. 그런 분들은 좋아하는 거 같아요. 가슴 깊이 윤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영화를 분석하고 볼 수 있는 분들은.
어떤 영화든 보고 나서 편안해지는 게 좋지 불편한 건 별로더군요. 게다가 난 어떤 게 박찬욱 식의 독특함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 독특함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이 한국식 정서에 안 맞아서 그런가. 이상한 북유럽식 정서같기도 하고..;;;;
리체
5 5 09 at 5:26 오후
uperpo/ 영화도 보지 않으면서도 그 영화 얘기를 하고 있는 제가 더 상관 없는 말을 하는 셈이죠, 뭐…
리체/ 제가 보기엔 박찬욱의 그 정서가 독특한 ‘한국식 마이너 정서’ 같아요. 그래서 외국에서도 먹히고, 국내에서도 마니아가 뚜렷하고…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건 이 사람 영화에 수백만 씩 들어차는 현상이죠.
가슴시린
6 5 09 at 10:12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