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ettist

the long and winding road

iCon,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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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저 일요일 저녁에 집어든 책일 뿐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고, 또 일종의 자료 조사 차원에서도 이 책을 읽어야 했다. 그래서 침대에서도 읽었고, 소파에서도 읽었는데, 그러다 일요일 저녁이 모두 지나버렸다. 월요일 출근길, 나는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으며 수없이 낄낄거리고, 코끝이 찡하도록 감동을 받았다. 내 감정의 이입은 몹시도 당황스러운 것이었는데, 이입의 대상이 바로 이 괴팍하기 이루 말할 데 없으며, 성격이 모나기로는 아마도 은하계에서 경쟁자를 찾기 힘들 것 같은 데다, 자기 도취와 냉혹함이라는 합쳐지면 극약이 되는 화학물질을 대뇌에서 날마다 합성하고 있던 스티브 잡스였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이 책은 아침 출근길에서만 읽어야 하는 책처럼 느껴졌다. 내 회사도 아닌 회사에서, 내가 인생을 바쳐 가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 직장인에게, 바다 건너의 모난 천재의 삶은 인생의 지침서와도 같았다. 내가 내 인생을 조금만 더 훌륭하게 살고 있었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남들과 쉽게 어울리고, 타인의 잘못에 나의 잘못만큼 관대하게 응할 수 있는 좋은 성격을 가졌더라면, 이 책은 내게 아무 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스티브 잡스가 “절대로 그들과 인터뷰하지 말라, 걸리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공언했을 정도로 이 책의 저자인 윌리엄 사이먼과 제프리 영은 스티브 잡스의 약점을 강조함으로써 그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은 법이지만, 골로 떨어지고 있는데 기분 좋을 사람은 없는 법이다. 게다가 그 골로 떨어져야 하는 운명을 받아 들여야 하는 사람이 스티브 잡스라면 더더욱. 그 덕분에 하나는 확실해졌다. 이 책에서 나쁘게 말한 스티브의 모습은 아마도 90% 이상 정곡을 찔렀던 모양이다.

사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2005년 1월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의 맥월드 컨퍼런스에, 나도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를 봤다. 췌장암을 극복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놓고서는 자신감과 열정만으로 수천 명을 압도하는 그 사람을. 그 때 내가 만났던 것은 한낱 기업체의 CEO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예술가였다. 하이테크 산업에 대한 열정이라는 자신만의 재능을 이용해 제품과 서비스라는 예술품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키고야 만다.

서태지가 새 앨범을 냈다. 중고등학교 때처럼 너무나 새로운 음악이라고 감탄하기에는 난 너무 음악을 많이 들었다. 딱히 그의 음악이 다른 가수들보다 뛰어난지도 이젠 모르겠다. 그래도, 난 여전히 마우스를 클릭해가며 서태지의 새 앨범을 산다. 버릇 때문이 아니다. 그건 예술가와 팬의 상호 교감이다. 네가 아무리 삽질을 해도, 난 널 알아볼 줄 아는 안목 있는 팬이니, 너의 삽질마저 아름답게 받아들여주겠다는 식의 어리석은 교감.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겉모양만 번드르르했지, 너무 납작해서 오래 타이핑하면 손이 아픈 아이맥의 알루미늄 키보드와, 툭하면 고장을 내서(벌써 세 개 째다) 열받게 하는 마이티마우스를 붙잡고 있다. 거실 TV에 달린 홈씨어터용 PC는 제조일로부터 딱 1년 만에 메인보드 고장으로 AS센터에 한 차례 다녀와야 했던 맥미니이고, 내 서랍에는 이제 배터리가 1시간도 유지되지 못하는 2004년 초에 산 구식 아이팟이 수많은 형제들(아이팟 셔플, 나노 등등)과 함께 잠들어 있다. 겉보기엔 멋져 보이지만, 실속을 따진다면 애플의 제품은 살 게 아니다. 그래도 난 여전히 지갑을 연다. 그건 콘서트에 가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오늘은 그 가수가 목이 쉴 수도 있지만, 내일은 아마도 전설로 남을 공연을 벌일지도 모르는 것이고, 그 때 내가 그 자리에 없다면, 그 슬픔은 평생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 그 전에는 글로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젠 된다. 다 이 책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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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가슴시린

8월 1st, 2008 at 4:40 오후

2 Responses to 'iCon,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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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글루스에서 옮겨오셨네요.
    상대로 하여금 그 책을 읽고 싶게끔 만드는 글솜씨는 여전하시네요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연경

    5 8 08 at 3:09 오전

  2. 감사합니다. 그런데, 워드프레스도 그다지 편리하기만 한 툴은 아니네요. 이글루스 때가 편하긴 했는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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