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ettist

the long and winding road

황우석과 워렌 하딩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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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크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무열 옮김, 황상민 감수/21세기북스(북이십일)

아는 분과 ‘황우석 사태’(이런 표현 말고는 딱히 다른 표현을 찾기도 힘들다.)에 대해 얘기하다 ‘워렌 하딩의 오류’라는 말이 나왔다. 블링크라는 책을 보면 최근 일어났던 일련의 사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바로 책을 샀고, 주말 동안 읽으며 무릎을 몇 번이고 치게 됐다.

미국 대통령 워렌 하딩은 대통령 임기를 2년 남짓 보낸 뒤 ‘급사’했다. 대통령으로서의 평판도 ‘미국 역대대통령 가운데 최악’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왜? 첫 눈에 반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체격과 조각같은 얼굴, 저음의 굵은 목소리는 워렌 하딩을 만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정말 대통령감”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황 교수에게 우리가 가졌던 인상은 과연 크게 달랐을까? 나 스스로 16일 황 교수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는 말을 주위 사람들과 연신 반복하면서도 “그래도 왠지 믿고 싶다”는 말을 함께 했다. 잘 생긴 사람이 분명한 어조로 확신있게 말하는데 그는 더구나 ‘국민영웅’ 아니었나. 결과는? 과학으로 검증한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황 교수의 말을 믿지 않고 있다. 사실 그 사람들의 말이 없어도 나 혼자서도 알 수 있었다.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어렵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 스스로 확신과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다. 일부러 잘 꾸미고 번듯하게 보일수록 초조한 법이다. 그래도 난 황 교수에게 빠져들었다. 전형적인 워렌 하딩의 오류에 빠진 셈이었다.

이 책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블링크’라고 스스로 이름붙인 2초 만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하고 정확한지에 대해 심리학과 경제학을 동원해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블링크가 얼마나 쉽게 오류를 불러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책 속에서는 독자를 위한 재미있는 실험이 존재하는데 ‘범주 나누기’라는 게 그 실험이다. 예를 들어 철수 영희 공업 가사 이런 단어를 ‘남자’와 ‘여자’라는 범주로 나눠보라는 실험이다. 실험은 이어진다. ‘남자와 직업’이 한 범주가 되고 ‘여자와 가정’이 한 범주가 된다. 그래도 사람들은 단어를 잘 나눈다. 결정타는 마지막 실험. ‘남자와 가정’이 한 범주, ‘여자와 직업’이 한 범주가 된다. 공업은 ‘남자와 가정’에 속해야 할까 ‘여자와 직업’에 속해야 할까?

우리 마음 속에는 수많은 블링크가 쌓아놓은 무의식의 장벽이 너무 많다. ‘황우석 사태’는 그런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던져준 셈이다. 허탈하고 분노도 약간 생기지만, 한국판 워렌 하딩의 오류를 겪었다고 생각해 보면 되겠지. 앞으로는 적어도 이런 일이 줄어들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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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가슴시린

6월 14th, 2008 at 4: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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