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ettist

the long and winding road

커트의 공원

with one comment

그건, 그냥 공원이었을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지만, 시애틀에 처음 도착한 사람들은 그 곳을 그렇게 불렀다. “커트의 공원”.

예전 커트가 살던 집에 새로 입주한 사람은 이미 커트의 흔적들을 모조리 헐어 버리고 그 터에 새 집을 지었다. 커트 코베인 박물관 따위야 당연히 찾을래야 찾을 수 없고, 커트를 ‘기린다’는 표현은 어디 그 앞 워싱턴 호수 바닥에 묻혀 버린 모양이었다. 가끔 어떤 열광적인 팬들이 커트가 자살했다던 그 온실을 보겠다고 나무를 기어오르는 통에, 집주인은 담장도 2미터 정도로 높여 버렸다. 깍쟁이 같으니라고!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 곳이 그냥 그렇게 사라질 곳은 아니었다.

집 옆 작은 공터에는 아마도 커트 코베인이 앉았을, (그랬었다고 누군가 시애틀 편 론리플래닛에 적어 놓기도 한) 그랬으리라 믿고 싶은 두 개의 벤치가 있었다. 숲 사이로 보이는 저 워싱턴 호수를 내려다보며. 벤치에는 갖은 낙서(혹은 시)들이 잔뜩 적혀 있었고, 누군가 장미와 양초를 가져다 벤치 위에 올려 놓았다. 불을 붙여본다. 누군가, 나같은 놈이었을지도. 이미 다른 한 벤치 주위에는 남녀 셋이 낙서(혹은 시)들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그 낙서(혹은 시)들과 내 옆에 서성거리던 그 팬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Man, it’s fucking hard to get here!”

그래, 나도 이해해. 버스도 없고, 이정표도 없고, 론리 플래닛 시애틀 편(주의! U.S.A.편에도, North Western편에도 없음.)에만 몇 줄 간단히 어디어디 근처라고 적혔을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한테 물어물어, ‘저~기로 가면 된다’는 낙천적인 시애틀식 안내나 들어 가면서, 간신히 간신히 찾아와야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투덜대는 목소리 뒤에는 꼭 따라붙는 말이 있다.

“그래도, 오길 잘했다구!”

처음 그 수수께끼같은(혹은 그냥 낙서같은) 가사들을 들으며, 커트 코베인이 인터뷰에서 ‘제 가사는 시에요, 시!’를 강조하는 걸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smells like teen spirit’따위에 머리를 흔들 때엔 정말 몰랐었다. 170을 간신히 넘는 키의 비리빌하고 자그마한 이 녀석이 세계를 뒤흔드는 시대의 아이콘이 될 줄은. 지미 헨드릭스(또 다른 시애틀 출신 유명인사, 아는 사람들은 아는.)는 몰라도 너바나와 커트 코베인은 아는 사람이 생겨날 줄은 더욱 더. 게다가 그게 흑인 성공담이라거나, 반항적인 시대분위기, 카운터 컬처의 물결같은 거대한 사회적 호응의 준비도 전혀 안되었던, 그저 그런 90년대 초반에 생겨나다니. 지저분한 옷을 입고 마약에 쩔어, 양성애자일지도 모른다는(혹은 그렇다고 말하는) 그런 녀석에게, 세상이 확 돌아 사랑에 빠지다니. 나야, 그냥 젊으니까, 저런 시끄럽고 공격적인 음악에 푹 빠져도 될 때였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동안, 세상이 다 젊어져 버렸던 거다. 그게 그런지였다.

지금, 커트 코베인은 전설이고, 너바나는 우리 시대의 비틀즈가 되어 버렸다. ‘Smells like teen spirit’은 90년대에 10대였던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송가가 되었고, 심지어 당시 여학생들은 “너바나처럼 머리 기르고 오지 않으면 안해.”라면서 머리 짧은 남자들과 데이트를 거절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인데, 이 인간이 그렇게 커버렸다가 정말 ‘극적으로 허무하게’(라는 표현이 말이 된다면…) 죽어 버린 이 곳까지 다리 좀 아프다고 찾아가지 않았었더라면, 난, 그럼 지금 한국에 돌아온 난 도대체 어떻게 외국에 다녀왔단 말을 하느냔 말이다.

p.s. 그래서 티내겠답시고 온 시애틀을 헤매고 돌아다녀 너바나 티셔츠를 잔뜩 사왔다. 혹, 누군가 시애틀에서 염가에 티셔츠를 사고 싶다면 Pike Place Market 지하에 한국인 노부부께서 하시는 가게가, 제일 쌌음. 깎을 수도 있음. 기념품도 선물로 더 줬음. 동포가 좋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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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가슴시린

6월 12th, 2008 at 12:08 오전

One Response to '커트의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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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게 그런지군요.

    커트 코베인이 양성애 기질이 있었고, 심지어는, 게이라고 말하면서 남자와 관계도 가진 적 있다는 (…I used to pretend I was gay just to fuck with people… ) 것은 커트 코베인 스스로 밝힌 바 있습니다.

    암튼, 시애틀까지 가셨었군요. 좋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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